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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균] 어느 겨울밤/최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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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2회 작성일 2025-04-04 10:43:2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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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밤/최창균

자다 깬 어느 겨울밤이었다
얼어붙은 어둠을 뚝뚝 분지르며 밖에 나가
축사 앞 쇠똥 더미에다 오줌 누려 했더니
그 자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질 않은가
볼일 보면서 생각해보니 혹시 누군가
나처럼 이곳을 방금 전에 다녀갔다는 것인데
순간 머리가 서고 귀가 확 열리더니
축사 안에서 무슨 기척이 들리는 것이었다
나는 두엄 더미에 늘 꽂혀 있는 쇠스랑 거머쥐고
시커멓게 소들이 매여 있는 축사 안을 주시하니
아니나다를까?
그 기척의 누군가가 어른거리는 것이 아니던가
그때까지도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던 나는
쇠스랑 높이 치켜들고 슬금슬금 다가갔는데
갑자기 이눔아 여기 네 애비다 하는 소리
거기 칠흑의 어둠을 인광으로 밝히며
소에게 깔 짚 넣어주고 있는 아버지였다
산다는 것이 저리 자다 깨어서도
꼼지락거려야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쇠스랑으로 두엄을 쳐내고 있는 것이었다

​- 최창균,『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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