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재기] 첫눈 오는 날/구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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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오는 날/구재기
첫눈이 소담스럽게
펑펑 쏟아지는
저물녘을 바라보다가
가까운 친구를 불러내어
집에서 멀지 않는 감자탕집에 든다
감자탕집은 온통 젊은이
무슨 죄를 지은 사람처럼
겨우 귀퉁이 빈 자리를 찾아
삐그덕거리는 의자 위에
묵은 엉덩이를 붙이고
여느 때보다 빠르게
소주잔을 돌린다
무슨 치기稚氣가 발동했는지
2차로 맥주잔을 기울이고는
밖으로 나와보니
첫눈은 이미 그쳐 있고
가로등불빛 달빛 눈빛으로
세상은 환해질 대로 환하다
취기醉氣가 오르는 탓일까
굳이 택시를 마다하고
집을 향하여 천천히 걷는다
집으로 가는 길은
가까워도 언제나 먼 길
밤은 이미 깊을 대로 깊어져
거리는 침묵 속으로 깊이 빠져 있고
침묵은 쌓인 눈 속에서의 찬란한 빛
불빛이 새어나오는 구멍가게 앞
평상 위에 덥썩 주저앉는다
평소 낯익은 가게집 아주머니가
힐끗 밖을 내다보더니
비를 들고 다가와서는
- 술 많이 마셨나? 참, 달빛 밝네!
하고, 평상의 눈을 쓸어내리며
내 곁에 앉으려는데, 문득
눈 쓸린 평상의 합판에는
나이테 하나 없다
나이가 보이지 않는다
- 『추가 서면 시계도 선다』(도서출판 지혜, 2014)
첫눈이 소담스럽게
펑펑 쏟아지는
저물녘을 바라보다가
가까운 친구를 불러내어
집에서 멀지 않는 감자탕집에 든다
감자탕집은 온통 젊은이
무슨 죄를 지은 사람처럼
겨우 귀퉁이 빈 자리를 찾아
삐그덕거리는 의자 위에
묵은 엉덩이를 붙이고
여느 때보다 빠르게
소주잔을 돌린다
무슨 치기稚氣가 발동했는지
2차로 맥주잔을 기울이고는
밖으로 나와보니
첫눈은 이미 그쳐 있고
가로등불빛 달빛 눈빛으로
세상은 환해질 대로 환하다
취기醉氣가 오르는 탓일까
굳이 택시를 마다하고
집을 향하여 천천히 걷는다
집으로 가는 길은
가까워도 언제나 먼 길
밤은 이미 깊을 대로 깊어져
거리는 침묵 속으로 깊이 빠져 있고
침묵은 쌓인 눈 속에서의 찬란한 빛
불빛이 새어나오는 구멍가게 앞
평상 위에 덥썩 주저앉는다
평소 낯익은 가게집 아주머니가
힐끗 밖을 내다보더니
비를 들고 다가와서는
- 술 많이 마셨나? 참, 달빛 밝네!
하고, 평상의 눈을 쓸어내리며
내 곁에 앉으려는데, 문득
눈 쓸린 평상의 합판에는
나이테 하나 없다
나이가 보이지 않는다
- 『추가 서면 시계도 선다』(도서출판 지혜,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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