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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한] 바다의 악보/강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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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회 작성일 2025-05-16 11:48:2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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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악보/강인한
​​― 벤 구센스*의「Sweet songs of the sea」에 부쳐

​​바다가 저만치 물러나자
썰물이 뱉어놓은 모래밭에 악보가 드러났다
당신의 입술은 동그랗게 모음을 발음하다가
그만 악보 받침대에 갇혀 나를 바라본다

​​오, 달콤한 붉은 입술은 적포도주를 담은 글라스
아니 두 장의 장미 꽃잎 같다
하지만 오래 전 당신은 이 해변을 떠났다

​​저만치 과거로부터 떠밀려온 트렁크에는
자물쇠가 채워졌고 두근거리며
들키고 싶은 당신의 사랑이 들어 있을 것이었다

​​두려운 비밀을 향해 걸어가는 내 발자국마다
한 장 두 장 물 젖은 악보가 따라오고
입 벌린 소라고둥이 트렁크 위에 앉아 소리친다
이제 곧 태풍이 불어온다고 내 마음 속
잠자는 태풍이
검은 수평선을 끌어낼 것이라고

​​그리운 당신의 기억을
이 해변에 떠도는 세이렌의 노래로 남겨두고서는
나는 이제 돌아갈 곳이 없다
돌아갈 곳이 없다

​​* 벤 구센스(Ben Goossens),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 『입술』(시학,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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