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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소용돌이 춤/고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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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4회 작성일 2025-04-30 15:47:0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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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 춤/고진하

폭우 내린 다음 날
맨 종아리로 무심천 여울목을 건너다보면,
밤새 불어난 물이 큰 바위에 부딪치며
소용돌이 춤을 추고 있네.

저렇듯 소용돌이치는
물의 무희(舞姬)가 악어의 이빨을 가졌더라면
바위는 마모되어 흔적도 안 남았으리라.
하지만 바위의 허리를 부드럽게 애무하는
무위(無爲)의 춤사위를 바라보며
문득, 내 생의 소용돌이도 겹쳐지네.

대관령 옛길처럼 숱한 굽잇길에서
행운의 여신을 부둥켜안고
소용(笑容)돌이 춤을 춘 적도 있지만
물불을 못 가리는 물욕에 눈멀어
물기둥 불기둥을 끌어안고
회오리친 적은 얼마나 많았던가.

홀황홀혜할 때도 있었지만
소용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화상을 입거나 익사할 뻔한 적은 또 얼마던가.

이제 등 뒤에 바짝 다가선
마지막 굽이,
홀연 죽음의 무희가 손 내미는 순간에도
그 손 맞잡고 춤출 수 있으려나.

산수유 목련꽃들이 쩍쩍 벌어지며
겨우내 웅크린 마음들을 들뜨게 하던
지난 봄날,
거대한 솔숲과 천년 사찰을 널름 집어삼킨
화마(火魔)의 소용돌이 춤도 나는 보았네.

- 『수탉』(민음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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