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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향연, 잔치국수/김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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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4회 작성일 2025-04-30 11:02:2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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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연, 잔치국수/김승희

어수룩하게 넓은 국수 막사발에
물에 삶아 찬물에 헹궈 소반에 건져놓은
하아얗게 사리 지은 국수를 양껏 담고
그 위에 금빛 해 같은
노오란 달걀 지단 채 썰어 올려놓고
하아얀 달걀 지단 따로 채 썰어 올려놓고
파아란 애호박, 주황빛 당근도 채 썰어 볶아 올려놓고
빠알간 실고추도 몇개 올려드릴 때

무럭무럭 김나는 양은 국자로
잘 우려낸 따스한 멸치장국을 양껏 부어 양념장을 곁들여내면
헤어진 것들이 국물 안에서 만나는 그리운 환호성,
반갑고 반갑다는 축하의 아우성.
금방 어우러지는 사랑의 놀라움,
노오란 지단은 더 노랗고
새파란 애호박은 더 새파랗고
빠알간 실고추는 더 빠알갛고

따스한 멸치장국,
아픈 자, 배고픈 자, 추운 자, 지친 자
찬란한 채색 고명과 어울려
한사발 기쁘게
모두 모두 잔치국수 한사발 두 손으로 들어올릴 때
무럭무럭 김나는 사랑 가운데,
화려한 한그릇의 사랑 그 가운데로 오시는 분
마침내 우리 앞에도 놓이는 잔치국수 한사발

(여자와 아이들을 제외하고 오천 명을 그렇게 먹이셨다)
(오늘도 그렇게 하셨다)

-  『냄비는 둥둥』(창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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