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장 여관/김명기 > ㄱ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오늘
76
어제
861
최대
3,544
전체
297,823
  • H
  • HOME

 

[김명기] 삼보장 여관/김명기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이창민 조회 8회 작성일 2025-04-24 08:31:23 댓글 0

본문

삼보장 여관/김명기

 저곳의 청춘은 허리 아래 깊숙이 박힌 초석으로 남았다. 날이 갈수록 쪼글쪼글해지는 바다를 향한 창문이라든지 한참 유행 지난 국적불명의 촌스러운 테라스에 마지막 그림자로 흔들렸던 이들도 이미 오래전 잊었을 것이다. 신새벽 막 도착한 기차에서 내렸거나, 한 번쯤 생의 유혹에 끌려왔거나, 혹은 그럴 듯한 이유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막막했을 때, 하나 둘 늘어가는 제 몸의 생채기 안으로 심지처럼 박히던 사람들을 묵묵히 태웠을 것이다. 그렇게 한 시절 역전 한 귀퉁이에 서서 숱한 비밀을 열람하는 동안 불안한 소문이 새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여닫히던 두꺼운 유리문도 이제 함구되었으므로, 그 속내에 자분자분 타들어 잿빛이 된 비밀들조차 알 길이 없다. 더 이상 불켜지지 않는 낡은 간판에 바람이 머리를 찧고 그 반동을 버팅기던 푸른색 아크릴 글씨 하나 저문 밤 안으로 떨어진다.

한때, 저곳의 웅숭깊은 방 안에 나도 검은 심지처럼 틀어박혀 밤새 타들어가던 적 있었나니.

 - 『북평 장날 만난 체 게바라』(문학의전당, 200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