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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파도/김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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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3회 작성일 2025-04-16 13:11:5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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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김명인

한때 질풍노도가 내 삶의
열망이었던 적이 있다.

월송정 아래 갈기 휘날리며 달려오는
달려오다 엎어지는 겨울 파도를 보면
어째서 제자리를 지키는 일이 부끄러움이며
떠밀려 부서져도 필생의 그 길인지.
어떤 파도는 왜 핏빛 노을 아래 흥건한 거품인지.

희망과 의욕을 뭉쳐놓지만 되는 일이 없는
억장 노여움이 저 파도의 막무가낼까?
한 치 앞가림도 긁어내지 못하면서
바위에 몸 부딪혀 스스로를 망가뜨리며
파도는 그래서 여한 없이 홀가분해지는 걸까?
한꺼번에 꺾어버리는 日收처럼 운명처럼.

매운 실패가 생살을 저며내는 동안에 파도는
부서진 제 조각들 시리게 끌어안는다.
다 털린 뒤에도 다시 시작하려고
시렁에 얹힌 먼지를 털어내고
비싼 일수를 찍으며 구멍가게 유리창
밖을 하루 종일 내다보지만

이제는 갈기 세워 몰고 갈 바람도 세간 속으로
들이닥칠 기력조차 쇠잔해진

한때 질풍노도가

- 『 바다의 아코디언』(문학과지성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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