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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이사/김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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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1회 작성일 2025-04-16 13:02:5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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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김명인

하루, 한나절 걸려 장롱이며 앨범 속 사진까지
죄다 태우고 남겨놓은 것이 적을수록
더욱 휑한 실내등도 꺼버렸다
현판을 내리고 종각에서 종을 떼어낸 뒤
덕지덕지 그을음이며 먼지
1톤 트럭에다 쓸어 담고
그 차에 아내를 태워 서울로 올려 보낸 뒤
새 주인 올 때를 기다린다
어머니는 어째서 이 외진 산골에 기도원을 세웠을까
기도란 외로워서 바치는 구애(求愛)일까
열어젖힌 기도실이며 방마다
한때 펄펄 끓었던 소망들 흔적 없고
절절함조차 비운 마음들만 그림자처럼 기어 나와
함께 마루턱에 쭈그리고 앉았다
바라볼 것이 많을수록 등 뒤가 허전하리니
눈 아래 들판 비로소 아득해 보인다
어제까지 내 눈높이에 맞추던 이 풍경들
어느 시야에 들어 다시 출렁거릴 날들 기약하느냐

- ​『꽃차례』(문학과지성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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