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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자전거/김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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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0회 작성일 2025-04-16 11:45:5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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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김명인

헉헉거리던 산복 도로에서 넘어지고 보니
따라오던 비포장길 거기까지다
잡초 사이 작은 바윗돌 듬성한 비탈 아래
드넓은 공단이 펼쳐져 있어 누군가 철책 곁 오솔길 따라
정문 쪽으로 내려갔을 테지만 그도 짐작일 뿐
매케한 연기가 여기까지 날아드니 공단은 가동 중이고
덩굴째 시든 초본 생사를 가린 지 오래임을 알겠다
여름인데 찌든 얼룩이나 잎 마름으로
원주민보다 더 멀리 초록이 소개되었으니
이곳까지 넘보느라 공단 불빛은 저녁이 오기도 전에 휘황하게
둘레를 감추고 또 감춘다 자전이든 공전이든 바퀴란
굴러갈 때만 달무리 지는 것
느린 회전은 속살만 어질러놓으므로
여기까지 끌고 왔더라도 속셈 읽힌 허울뿐인 자전거를
더 이상 탈 것이라 우길 수도 없겠다
저 공단에 삼교대가 있는 한
짓무른 테두리라도 붙들어야 하니
뭉개진 마을을 고향이라 부르면 마음부터 격해오는 법
나 말고도 여기 누가 캄캄한 울화를 심어놓았을까
한때 빛살 뿌리며 쌩쌩 내닫던
바퀴였겠지 인력을 벗어나자 자빠져버린 원반
어긋난 궤도거나 지워진 좌표처럼
  이지러진 중심을 녹슨 체인으로 얽어놓았다
저게 탈 것이라면 다들 한마디씩 할까?
거듭 넘어지고도 털고 일어섰던 한 시절에 대해!

 - 『꽃차례』(문학과지성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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