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인] 동두천 5/김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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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5/김명인
의자를 들게 하고 그를 세워 놓고 한 시간
또 한 시간 뒤에 교실로 올라갔더니
여전히 그는 의자를 들고 서 있고
선생인 나는 머쓱하여 내려왔지만
우리들의 왜소함이란 이런 데서도 나타났다
그를 두고 河선생과 주먹질까지 하고
나는 학교에 처벌을 상신하고
누가 누구를 벌 줄 수 있었을까
세상에는 우리들이 더 미워해야 할 잘못과
스스로 뉘우침 없는 내 자신과
커다란 잘못에는 숫제 눈을 감으면서
처벌받지 않아도 될 작은 잘못에만
무섭도록 단호해지는 우리들
떠나온 뒤 몇년 만에 광화문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나보다 나이가 더 들어뵈는 그의 손을 얼결에 맞잡으면서
오히려 당황해져서 나는
황급히 돌아서 버렸지만
아직도 어떤 게 가르침인지 모르면서
이제 더 가르칠 자격도 없으면서 나는 여전히 선생이고
몰라서 그 이후론 더 막막해지는 시간들
선생님, 그가 부르던 이 말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선생님, 이 말이 동두천 보산리
우리들이 함께 침을 뱉고 돌아섰던
그 개울을 번져 흐르던 더러운 물빛보다 더욱
부끄러웠다.
그를 만난 뒤 나는 그것을 다시 깨닫고
『동두천』(문학과지성사, 1979)
[출처] 동두천(東豆川)1, 2, 3, 4, 5/ 김명인|작성자 변주
의자를 들게 하고 그를 세워 놓고 한 시간
또 한 시간 뒤에 교실로 올라갔더니
여전히 그는 의자를 들고 서 있고
선생인 나는 머쓱하여 내려왔지만
우리들의 왜소함이란 이런 데서도 나타났다
그를 두고 河선생과 주먹질까지 하고
나는 학교에 처벌을 상신하고
누가 누구를 벌 줄 수 있었을까
세상에는 우리들이 더 미워해야 할 잘못과
스스로 뉘우침 없는 내 자신과
커다란 잘못에는 숫제 눈을 감으면서
처벌받지 않아도 될 작은 잘못에만
무섭도록 단호해지는 우리들
떠나온 뒤 몇년 만에 광화문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나보다 나이가 더 들어뵈는 그의 손을 얼결에 맞잡으면서
오히려 당황해져서 나는
황급히 돌아서 버렸지만
아직도 어떤 게 가르침인지 모르면서
이제 더 가르칠 자격도 없으면서 나는 여전히 선생이고
몰라서 그 이후론 더 막막해지는 시간들
선생님, 그가 부르던 이 말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선생님, 이 말이 동두천 보산리
우리들이 함께 침을 뱉고 돌아섰던
그 개울을 번져 흐르던 더러운 물빛보다 더욱
부끄러웠다.
그를 만난 뒤 나는 그것을 다시 깨닫고
『동두천』(문학과지성사, 1979)
[출처] 동두천(東豆川)1, 2, 3, 4, 5/ 김명인|작성자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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