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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 물끄러미 칸나꽃/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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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7회 작성일 2025-04-14 10:05:3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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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끄러미 칸나꽃/고영

혼자 남겨진 저녁은
가슴에 새긴 상처보다 더 빨리 와서 슬펐다.
그날 나는 울먹였던가, 울먹이다가
끝내 눈물과 화해했던가.

칸나꽃 피었다. 칸나꽃은 언제나
누군가 떠난 자리에 핀다.
칸나꽃 필 때쯤이면 나는 언제나 열병을 앓았다.
누군가 자꾸 슬픔 쪽으로
등을 떠밀었다.

어제 떠나간 사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오늘 남겨진 몰골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일 곱씹을 후회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낙엽 한 장의 팔랑거림마저 견디지 못할 내 가벼운 육신에 치를 떠는
연희동의 어느 쓸쓸한 저녁
칸나꽃 다 지기도 전에 칸나꽃 향기는 떠나고
발코니에 앉은 종소리 다 듣기도 전에
성당문은 굳게 닫힌다.

칸나의 슬픔
마리아의 눈물

사랑하는 것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떠난다.
24시 편의점에 불은 꺼지고
향기 없는 모과는 더 깊이 찌그러진다.

-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문학세계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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