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호] 섬/강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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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강연호
한 사나흘만 묵어가고 싶었다 더 이상은 곤란해 아름다움이 외로움으로 바뀌기 전에 뭍으로 나가야 해 그런 굴딱지 달라붙은 다짐들을 먼저 바다로 띄워 보내며 까닭없이 아득해지고 싶었다 그러면 어느 이름 모를 몇 장의 바다를 걷어낸 뒤 또 다른 곳에서 한 사나흘 묵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벽안개에 곱게 머리 헹궈낸 바람결 따라 뿌우우 뱃고동 순한 물길 열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래 떠돌수록 말없는 사내 되어 제 그림자 스스로 밟을 무렵이면 애쓰지 않아도 잔잔하게 밀려 비로소 뭍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았다
- 『비단길』(세계사, 1994)
한 사나흘만 묵어가고 싶었다 더 이상은 곤란해 아름다움이 외로움으로 바뀌기 전에 뭍으로 나가야 해 그런 굴딱지 달라붙은 다짐들을 먼저 바다로 띄워 보내며 까닭없이 아득해지고 싶었다 그러면 어느 이름 모를 몇 장의 바다를 걷어낸 뒤 또 다른 곳에서 한 사나흘 묵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벽안개에 곱게 머리 헹궈낸 바람결 따라 뿌우우 뱃고동 순한 물길 열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래 떠돌수록 말없는 사내 되어 제 그림자 스스로 밟을 무렵이면 애쓰지 않아도 잔잔하게 밀려 비로소 뭍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았다
- 『비단길』(세계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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