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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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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앞만 보며 부지런히 나를 앞질러갔습니다.
나는 산도 보고, 물도 보고, 눈도 보고, 빗줄기가 강물을 딛고 건너는 것도 보고
꽃 피고 지는 것도 보며 깐닥깐닥 걷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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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다 떠나갔지요.
난 남았습니다.
남아서, 새, 어머니, 농부, 별, 늦게 지는 달, 눈, 비, 늦게 가는 철새,
일찍 부는 바람,
잎 진 살구나무랑 살기로 했습니다.
그냥 살기로 했답니다.
가을 다 가고 늦게 우는 철 잃은 풀벌레처럼
쓸쓸하게 남아
때로, 울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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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겨울을 따라가지 않은,
가을 햇살이 샛노란 콩잎에 떨어져 있습니다.
유혹 없는 가을 콩밭 속은 아름답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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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가기로 합니다.
천천히, 가장 늦게 물들어 한 대엿새쯤 지나 지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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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햇살 안으로 뜻밖의 낮달이 들어오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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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택,『수양버들』(창비,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