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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뱀/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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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417회 작성일 2025-02-07 11:40:2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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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김기택

팔과 다리란 무엇인가
왜 살가죽을 뚫고 몸에서 돋아나는가
나는 안다 팔다리 달린 몸들을
그 몸들이 얼마나 뜨거운가를
그 끓어오르는 몸 속에
얼마나 많은 울음이 들어 있는가를
갓난것들은 태어나자마자
몸에서 울음부터 꺼내야만 하고
평생 동안 부지런히 지껄여
말들을 뱉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쉬지 않고 난폭한 힘을 배설하지 않는다면
끝내는 자신의 열기에 못 견뎌 뇌는 녹고
심장은 타고야 말 것이다
몸 속의 열기가 살가죽을 밀고 터져 나오지 않도록
살가죽 터진 자리마다 거추장스런 팔다리가 돋아나지 않도록
그리하여 온몸에 차가운 피가 흐르도록
모든 힘을 독으로 만들어야 한다
얼음처럼 차고 빛나야만 맑아지는 독
그 푸른 힘으로 끓어오르는 열기를 잠재워야 한다
그러면 마지막에는
가늘고 긴 선 하나만 몸에 남게 될 것이다

가벼워라 아아 편안하여라
팔과 다리털과 꼬리 모든 것이 생략되고
한 줄의 긴 몸으로 단순화되니
머리와 심장으로 언제나 땅을 만질 수 있고
마음껏 땅의 차가운 힘을 마실 수 있고
그 즐거움으로 독은 더욱 올라 꼿꼿하게 날이 서는구나
나무처럼 땅의 고요한 기운을 받아 숨쉬니
굶을수록 눈은 광채를 더하고
빠를수록 몸은 바람보다 소리가 작구나
번잡스럽게 바둥거리던 팔과 다리
그 몸에서 줄 창 쏟아내는 비명과 아우성도
독으로 소화시키면 이내 형체를 버리고 열기와 소음도 버리고
기꺼이 화사한 꽃 비늘이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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