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택] 나귀/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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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김기택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내가 같이 쳐다보자
안 그런 척 나귀는 슬쩍 눈을 돌렸다.
긴 인조 속눈썹을 단 여학생 같은 눈을
조용히 내리깔았다.
털가죽 속에서 흰 뺨이 붉어졌을 것이다.
희고 길고 가는 손가락들을
뭉툭한 발굽 어느 곳엔가 얼른 감췄을 것이다.
눈알 속은 넓고 넓어
하늘이 다 보일 것 같고
내장과 비린내와 부끄러움이 다 들킬 것 같은데
그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바닥까지 들여다봐도
아까 보았던 그 여학생은 없고
학교와 학원에서 하루 열 여섯 시간을 견딘
무거운 책가방도 어디에 숨겼는지 보이지 않았다.
억센 등뼈와 딴딴한 근육과 거친 숨소리만
열심히 나귀를 견디고 있었다.
눈이 너무 커서 다 내리까는데
몇 분은 족히 걸린 것 같았다.
내가 쳐다보는 동안
나귀는 질긴 가죽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귀만 쫑긋 열어놓은 채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나, 귀야.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내가 같이 쳐다보자
안 그런 척 나귀는 슬쩍 눈을 돌렸다.
긴 인조 속눈썹을 단 여학생 같은 눈을
조용히 내리깔았다.
털가죽 속에서 흰 뺨이 붉어졌을 것이다.
희고 길고 가는 손가락들을
뭉툭한 발굽 어느 곳엔가 얼른 감췄을 것이다.
눈알 속은 넓고 넓어
하늘이 다 보일 것 같고
내장과 비린내와 부끄러움이 다 들킬 것 같은데
그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바닥까지 들여다봐도
아까 보았던 그 여학생은 없고
학교와 학원에서 하루 열 여섯 시간을 견딘
무거운 책가방도 어디에 숨겼는지 보이지 않았다.
억센 등뼈와 딴딴한 근육과 거친 숨소리만
열심히 나귀를 견디고 있었다.
눈이 너무 커서 다 내리까는데
몇 분은 족히 걸린 것 같았다.
내가 쳐다보는 동안
나귀는 질긴 가죽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귀만 쫑긋 열어놓은 채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나, 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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