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택] 곱추/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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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추/김기택
지하도
그 낮게 구부러진 어둠에 눌려
그 노인은 언제나 보이지 않았다
출근길
매일 그 자리 그 사람이지만
만나는 건 늘
빈 손바닥 하나, 동전 몇 개 뿐이었다
가끔 등뼈아래 숨어사는 작은 얼굴하나
시멘트를 응고시키는 힘이 누르고 있는 흰 얼굴하나
그것마저도 아예 안 보이는 날이 더 많았다
하루는 무덥고 시끄러운 점오의 길바닥에서
그 노인이 조용히 잠든 것을 보았다
등에 커다란 알을 하나 품고 그 알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곧 껍질을 깨고 무엇이 나올 것 같아
철근 같은 등뼈가 부서지도록 기지개를 하면서
그것이 곧 일어날 것 같아
그 알이 유난히 크고 위태로워 보였다
거대한 도시의 소음보다 더 우렁찬
숨소리 나직하게 들려오고
웅크려 알을 품고 있는 어둠위로
종일 빛이 내리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출처 :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지하도
그 낮게 구부러진 어둠에 눌려
그 노인은 언제나 보이지 않았다
출근길
매일 그 자리 그 사람이지만
만나는 건 늘
빈 손바닥 하나, 동전 몇 개 뿐이었다
가끔 등뼈아래 숨어사는 작은 얼굴하나
시멘트를 응고시키는 힘이 누르고 있는 흰 얼굴하나
그것마저도 아예 안 보이는 날이 더 많았다
하루는 무덥고 시끄러운 점오의 길바닥에서
그 노인이 조용히 잠든 것을 보았다
등에 커다란 알을 하나 품고 그 알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곧 껍질을 깨고 무엇이 나올 것 같아
철근 같은 등뼈가 부서지도록 기지개를 하면서
그것이 곧 일어날 것 같아
그 알이 유난히 크고 위태로워 보였다
거대한 도시의 소음보다 더 우렁찬
숨소리 나직하게 들려오고
웅크려 알을 품고 있는 어둠위로
종일 빛이 내리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출처 :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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