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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어떤 흐린 날/강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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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75회 작성일 2025-03-25 17:19:2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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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흐린 날/강은교

-바리데기, 가장 일찍 버려진 자이며 가장 깊이 잊혀진 자 노래하다

바람이 얼룩진 접시 위, 물고기 한 마리 누워 있다. 그것
의 살은 다 파헤쳐져 있었으며 잘게 잘게 저며져 있었다.
이런 시간이 오기를 기다려 온 그것의 눈은 한껏 크게 벌리
고 창 밖의 어둠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따뜻하
죠? 라든가 … 라든가 …들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가끔씩
푸들푸들 경련하며, 어느 한 때 분명 바다 밑을 헤엄쳤을
그것, 어느 한 때 분명 모래 속을 파보았을 그것, 어느 한
때 물풀에게 사랑을 속삭였을 그것의 푸른, 시간이 얼마쯤
지나자 주방 아주머니가 들어와 그것의 너덜거리는 뼈를 꺼
내어 흔들며 바람속으로 사라진다. 세상에 그림자 없는 것
들은 없어, ‘이 물고기는 매운탕을 끓여야 합니다 ’ 아무
도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푸들거린담, 아주머니는
긴 뼈를 귀찮게 흔든다, ‘대가리는 매운탕에 넣어’, 고동
색의 점잖은 빛, 바람 소리에나 귀 기울일 것을, 우리의 다
리는 이제 너무 힘이 없어, 갑자기 접시 위에 눈물이 흐른다.

아주머니의 손에 떠메어 나가는 물고기의 뼈와 둥글고 울
퉁불퉁한 대가리에 쓰러져 누워 질질 끌려 나가는 지느러
미, 물고기의 눈이 뒤를 돌아본다, 바람벽 같은 상 위에 지
느러미가 검은 돛폭처럼 휘돈다. 놀란 이들이 뼈만 남은 팔
목의 시계를 바라본다.

삶은 얼마나 가혹한가
햇빛은 얼마나 뜻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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