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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듬] 푸른 수염의 마지막 여자/김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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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382회 작성일 2025-02-05 21:59:2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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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의 마지막 여자/김이듬 


나의 열쇠는 피를 흘립니다 내 사전도 피를 흘립니다 내 수염도 피를 흘리고 저절로 충치가 빠졌습니다 내 목소리는 굵어지고 주름도 굵어지고 책상 서랍의 쥐꼬리는 사라졌습니다 소문대로 난 일 년의 절반 지하실과 지상을 공평하게 떠돕니다

나의 눈에서 물이 흐릅니다 한쪽 눈알은 말라빠졌습니다 두 다리의 무릎까지만 털이 수북합니다 음부의 반쪽에선 생리가 나오고 오른쪽 사타구니엔 정액이 흘러내립니다 백 년에 한 번 있는 일입니다만

하하하 농담 그냥 여자도 남자도 아니고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니라는 말을 요즘 유행하는 환상적 어투로 지껄인 겁니다 말도 하기 귀찮다는 예 바로 그 말입죠

자자 내게 제모기와 쥐덫은 그만 보내시고요 이가 들끓는 가발도 처치곤란입니다 도려서 얹어놓은 과일들 이 모든 쓰레기는 충분해요 머리맡에 양초든 향이든 피우지 마세요 죽겠네 정말 꽃무더기 따위 묶어오지 말라니까요

죽은 장미가 그랬죠 너는 아름답구나

지금은 뼈만 남은 늙은이와 놀다 쉬는 참입니다 매일 한두 명과 그러고 그러지만 어떤 날은 여자애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정신이 나갑니다 공동묘지로 허가 났나요 전기가 끊어지고 수도관이 막힌 지도 한참 됐어요 하긴 정신차린다는 말의 뜻도 모르지만 제발 축언은 닥치고요 축복도 그만 좀 주세요

지하실엔 매달 공간이 없답니다 정원에도 파묻을 자리가 없구요 누군 나더러 불러들였다는데 제 발로 찾아와 발가벗는데 난들 별 수 있나요 공평하게 대할 수밖에

내게 없는 걸로 주세요 가령 고통이니 절망 허무랄까 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전에만 있는 그 말의 뜻이 통하게요 안 될까요 그럼 견딜 수 없는 같이 흔해빠진 문구를 써먹을 수 있는 어쩌구 저쩌구 혹은 질투라는 단어에 적합한 대상을 보내주세요

누가 봤을까요 나도 못 봤는데
그러나 나는 아름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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