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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사릿날/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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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321회 작성일 2025-03-01 11:26:0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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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릿날/김선우

아무래도 오늘은 사릿날,
음력을 쓰지 않는 지구 남쪽 끝섬에서
달점을 쳐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
벙글던 몸이 만삭이다가 그대를 낳고 난 아침
내가 다시 순결한 황무지인 것 바닷가 사람들은
잠,이라고 말하네 밀물과 썰물의 시간을
석 잠째 혹은 넉 잠째라고 더러는 아주 깊어
여섯 잠째의 밀물이 썰물져 가기도 하네

깊은 썰물이 몸속을 돌아나가
달의 소음순에 밀물져 닿는 아침,
대지를 향해 열린 닫힌 문을 통과해
달에 사는 물고기 떼 미끄러져 오는 동안
인간의 지느러미가 스쳐간 문 속의 문들
해저처럼 푸르네 아무도 이 문을
통과하지 않고선 숨 얻을 수 없으니
이제 막 해변에 닿은 구유 속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별들이 처음처럼 끓고 있네

아무래도 오늘은 사릿날,
이 지구를 이처럼 사모하지 않았으면

지구의 시간은 계절 밖을 떠돌았을 것이니
금이 간 뼈를 보름처럼 구부리고
파도를 밀며 끌며 오는 사랑아 이 섬 어딘가
죽음보다 질긴 사랑이 있어
우리가 낳은 혼례의 어린 몸들 깊으니
일곱 잠째의 밀물이 이번 생엔 없는 것이어도
다음 생의 첫 잠으로 올 것을 아네

*사리 : 매달 음력 보름과 그믐날 달의 인력이 커져 조수가 가장 높게 들어오는 때.

-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2007년,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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