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달걀 삶는 시간/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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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삶는 시간/김선우
(엄마는 반숙을 좋아한다) 냄비에 물을 채우고 달걀을 넣은 후 가스 불을 켠다 말갛게 쫄깃한 흰자 속의 노른자 목숨이 도려던 우주 (우리는 먹고 먹이고 먹힌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7분간 반숙의 최적 기술은 시간을 맞추는 일
물이 팔팔 끓는 순간부터 시계를 본다 1분이 지안다 놀라며 흔들리는 2분이 지난다 견디는 3분이 지난다 2분 전의 그 달걀이 아니다 다른 우주 회오리친다 4분이 지난다 1분 전의 그 세계가 아니다 엉기기 시작한다 인생처럼 5분 6분 7분이 지난다 가스불을 끈다 매 분마다 죽음을 통과해 매 분마다 달걀은 변한다 찬물에 집어넣는다 찬물 속에서 다시 5분
자주 내 이름을 잊는 팔순 엄마의 입속에 4등분한 달걀 반숙을 넣어드린다 (기억은 먹고 먹이고 먹힌다) 엄마가 웃는다 괜찮다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변화해가는 것일 뿐이다 달걀도 엄마도 나도 정신도 마음도 존재한다면 신 역시 그러할 것이라고 그러니 있는 힘껏 잘 변해보자고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나를 향해 엄마가 웃는다
-녹턴, 2016년 4월, 문학과지성사
(엄마는 반숙을 좋아한다) 냄비에 물을 채우고 달걀을 넣은 후 가스 불을 켠다 말갛게 쫄깃한 흰자 속의 노른자 목숨이 도려던 우주 (우리는 먹고 먹이고 먹힌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7분간 반숙의 최적 기술은 시간을 맞추는 일
물이 팔팔 끓는 순간부터 시계를 본다 1분이 지안다 놀라며 흔들리는 2분이 지난다 견디는 3분이 지난다 2분 전의 그 달걀이 아니다 다른 우주 회오리친다 4분이 지난다 1분 전의 그 세계가 아니다 엉기기 시작한다 인생처럼 5분 6분 7분이 지난다 가스불을 끈다 매 분마다 죽음을 통과해 매 분마다 달걀은 변한다 찬물에 집어넣는다 찬물 속에서 다시 5분
자주 내 이름을 잊는 팔순 엄마의 입속에 4등분한 달걀 반숙을 넣어드린다 (기억은 먹고 먹이고 먹힌다) 엄마가 웃는다 괜찮다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변화해가는 것일 뿐이다 달걀도 엄마도 나도 정신도 마음도 존재한다면 신 역시 그러할 것이라고 그러니 있는 힘껏 잘 변해보자고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나를 향해 엄마가 웃는다
-녹턴, 2016년 4월,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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