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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독을 차고/김영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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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405회 작성일 2025-02-23 14:36:2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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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毒)을 차고/김영랑

내 가슴에 독(毒)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害)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 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아도 머지않아 너 나 마주 가 버리면
억만 세대(億萬世代)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虛無)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
≪문장 10호≫(193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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