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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숙] 책과 칼과 빵/황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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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67회 작성일 2025-04-01 22:20: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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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칼과 빵/황정숙

책과 칼은 평등해졌다
빵은 딱딱하고 이미 존재하지 않았고
평등해진 빵은 사라진 빵을 찾았다
한 번이 아니라 애써 열아홉 번 찾았다
고아 소년의 기도하는 모습을 반죽으로 만들어
수도사가 한 소녀에게 선물한 것이 브레첼이라는 빵이다
수도사가 소녀에게 빵을 선물할 때
책과 칼도 함께 선물했는지 알 수 없지만
칼은 소년의 것이다 소년은 빵을 썰고 또 썰었다
썰어진 빵의 단면은 책의 페이지를 떠올리게 했고
장발장은 늘 그 페이지에서만 빵을 훔쳤다
루이 16세는 합법적이다 짐이 원하는 길을 걸었다
칼날에 튕긴 빵 조각처럼 우리는 책에서 혁명으로 넘겨졌으나
칼은 꽂혀 있다 책꽂이 가득 책 속에 칼이 꽂혀 있으므로
내 책 속엔 칼이 있다 책은 칼집이 아닌데
책은 칼과 빵 사이에 있다
기도하는 소녀도 빵을 굽는 수도사도 없는데
우리는 칼을 털고 칼을 닦고 칼을 칼집에 꽂는다
책은 그렇게 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빵의 역사를 기록한 책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빵은 부드럽고 이미 존재하는 것을 알았다
소년을 브레첼 빵에서 꺼냈다
칼과 빵과 소년은 평등해졌다

ㅡ계간 《아토포스》(2024,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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