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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오장환신인문학상 / 모르는 과자 주세요 / 이신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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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92회 작성일 2023-06-25 18:54:0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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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과자 주세요 / 이신율리

아는 과자는 어제 다 사라졌어
달콤한 맛을 알기 전에 사라져서 다행이야
사과는 계모가 다 먹어치웠지 내겐 사과 대신 다크초콜릿만 주고

유혹하지마, 모르는 것은 달콤하지

계모를 동그랗게 묶어 마카롱을 만들었어
빨주노초파남보 다음은 분홍이 되는 이상한 나라에서
서로 모르는 가족끼리 식탁에 둘러앉아 거짓말 두 개 넣고

맛없는 크림이 자랄 때까지 과자는 햇살의 공식을 모른다고 했지
빵, 터지는 멘토스와 다이어트 콜라 폭발하는 계모가 좋아
폴란드초코와플 테니스공껌 턱 빠지는 풋젤리 모르는 과자 주세요

쓴 맛도 알고 싶어?
쓴맛이 아는 과자를 안다고 먹고 칡촉
아는 과자가 모르는 과자를 모른다고 먹어치워 악마의 잼 누텔라

계모의 주머니가 깊어지고 있어
아는 과자만큼 손목이 따뜻해져 거울아 거울아

주머니에 빠지는 줄도 모르고 나는
츄파춥스 일곱가지 맛을 빨면서 모르는 과자를 찾아가지

[심사평]

오장환문학상 신인상에는 총 107명의 응모자들이 모였다. 수준이나 완성도 면에 크게 떨어지는 시들은 많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시들이 감상적이고 설명적이며 관념적이었다. 시의 언어가 산문의 언어와 다른 점은 의미의 명료함이 아니라 오히려 모호함이다. 세계가 확정해놓은 의미로부터 언어를 해방시키기 위한 시의 전략이다. 때문에 시의 언어는 감상과 설명과 관념과는 거리가 멀다. 도리어 세계의 구체적 이미지를 통해 세계의 실재를 드러낸다. 자신의 시가 어떤 세계와 마주하고 있는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할 일이다.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의 손에 남은 작품은 김미소, 김점복, 김창훈, 최진명, 이신율리 등 총 다섯 명의 시들이었다.

「페이드 아웃」 외 4편을 보내온 김미소의 시들은 일상적 대상과 사건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목소리로 인해 일상은 일상 너머 존재하는 비극성을 서서히 드러낸다. 특히 「여름에게」는 폭발적인 목소리의 흐름이 여름이라는 계절에 새로운 상상력을 끌어들이며 성장과 소멸, 삶과 죽음이 난반사되는 경험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시의 목소리가 지닌 리듬과 그 리듬이 불러일으키는 파토스는 우리를 참혹하지만 매혹적인 세계로 안내한다. 그러나 다른 시편들은 아직 너무 거칠고 손쉽게 관념어와 추상어들이 남발되고 있다. 더 충분한 상상과 구체성을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해 보인다.

 

「비대칭의 아침」 외 4편을 보내온 김점복의 시의 장점은 대상을 낯설게 우리 앞에 새롭게 존재하도록 하는 점이다. 이를 위해 그가 선택한 발화 방식은 서로 다른 두 가지인데, 하나는 철저하게 대상과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 다른 하나는 아예 대상의 내부로 파고들어가는 방식. 둘 다 그에게는 효과적인 시적 전략으로 보였다. 다만, 대상과의 거리가 어정쩡할 때, 대상에 대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거나 대상에 대한 피상적 해석을 가하는 시들이 다소 눈에 띄었다. 그 결과 시가 상식적 세계를 뛰어넘는 성취를 보여주지 못하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자신이 무엇을 써야 하는지 어떤 세계를 보여주고자 하는지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계동 104번지」 외 4편을 보내온 김창훈의 시에게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묘사다. 치밀한 묘사가 끌어들이는 이미지는 대상과 정황에 새로운 감각을 부여해 시가 마주한 세계를 낯설게 다시 경험하도록 한다. 특히 그의 시 「환생」이 보여주는 이미지의 감각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할머니”라는 어쩌면 번연할 수도 있는 소재를 다양한 이미지들을 통해 다른 각도로 접근하면서 “보신 분 연락 안 해도 무방해요”라는 역설을 끄집어낸다. 그 역설을 통해 “환생”은 복잡한 다층적 의미를 띄고 우리 앞에 다시 놓이게 된다. 그러나 이런 성취는 많지 않다. 다소 식상한 발상에 너무 기대 있는 시들이 있는가 하면 협소한 현실로 수렴되어 상식적 결론에 이르는 시들도 있었다. 이미지를 좀 더 밀고 나가는 힘 그래서 모르는 세계로 시를 진입시켜 보는 용기가 더 보태진다면 조만간 그를 지면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A4」 외 4편을 보내온 최진명 시의 존재론적 시선은 매력적이다. 그는 일상의 감각들 확장시키고, 그 감각에 의해 파생되는 이미지들에 대해서도 소홀히 하는 법이 없다. 그렇게 외부에서 길어 올려진 감각들이 내면의 고통스러운 목소리와 버무려지며 내면과 세계가 조우하게 된다. 내면도 세계도 그 과정에서 변화를 겪는다. 다른 내면과 세계가 그의 시에서 새롭게 창조된다. 그러면서도 섣불리 흥분하지 않는 점은 그의 시의 또 다른 매력이다. 시 「환촉」은 그가 어떻게 감각과 이미지를 운용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미지란 결국 하나의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세계의 통합적인 감각에서 시작된다는 사실도 이 시를 통해 새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시들은 관념적으로 수렴되는 것처럼 보여서 무척 아쉬웠다. 관념은 결국 세계를 축소하고 자폐적이고 왜소한 내면만을 보여줄 뿐이다. 최진명의 시를 손에서 내려놓는 데 오랜 망설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우리는 최종적으로 이신율리의 시를 선택했다. 통통 튀는 감각으로 무장한 자유로운 상상력은 우리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리듬을 통해 그 상상력에 생기를 불어넣는 점은 그의 시가 지닌 큰 장점이었다. 이런 점은 다른 응모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매력이었다. 그럼에도 거칠지 않고 과하지 않으며 매끄럽게 시를 진행하는 솜씨는 그가 만만치 않은 내공의 시간을 거쳐왔음을 짐작하게 한다. “아는 과자는 어제 다 사라졌어”라고 시작하는 그의 시 「모르는 과자 주세요」는 흔한 백설공주 계모 모티프에서 시작되는 것 같지만 다양한 과자의 감각과 발랄한 리듬과 어우러지며 상식적 해석의 차원을 넘어서며 우리를 한번도 가보지 못한 세계로 데려간다. 결국 “모르는 과자”란 ‘모르는 세계’의 상관물이며, 그 세계로 진입하려는 자의 불안을 아이러니하게도 발랄한 리듬과 감각적인 이미지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시에서 상식세계의 윤리를 대상에게 들이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대상에 대한 역설적 접근이 가능해지며 이러한 접근을 통해 새로운 윤리가 발생한다. 이것이 그가 보여주는 “모르는 세계”의 모습이다. 다만, 그의 시에서 일상적 정황에 너무 도드라질 때 감각과 리듬만 남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점은 그의 시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아쉽게 당선에서 밀려난 분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곧 좋은 소식으로 만나게 될 것을 믿는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그가 지금보다 훨씬 더 ‘모르는 세계’로 그의 시가 통통 튀며 뛰어나가길, 그래서 우리가 더욱 자유로운 상상력의 언어로 우리 세계를 다시 창조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우리 시의 영토가 조금쯤 넓어지겠다. 정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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