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전북도민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함종대
페이지 정보
본문
가장 낮은 곳의 말言
발톱은 발의 말이다
발은 한순간도 표현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나는 낮은 곳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짓눌리거나 압박받는 곳에서 나오는 언어는 어감이 딱딱하다
그렇다고 낮은 곳 아우성이 다 각질은 아니어서
옥죈 것을 벗겨 어루만지면 이내 호응한다
늦은 퇴근 후 양말을 벗으면
탈진하여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발가락들이 하는 말을 더럽다고 외면한 날이 많았다
안으로 삼킨 말이 발등으로 통통 부어오른 날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나에게 내미는 말을
나는 야멸차게 잘라내며 살았구나
오늘은 발을 개울에 데려간다
물은 지금 머무는 곳이 가장 높은 곳이라
말하지 않아도 속내를 아는 양
같은 족을 만난 듯 온몸으로 감싸 안는다
발이 내어놓는 울음인지 물의 손길인지
분간할 수 없는 감정이 봄나무에 물오르듯 올라온다
머리를 낮게 숙여 두 손으로 발을 잡아본다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는지 볼까지 흠뻑 젖었다
개울이 발의 울음소리까지 보듬는 걸 보면
오래전부터 산의 발등이나
나무들의 발가락을 어루만져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개울도 울컥거릴 때가 있어 강에 발을 담근다
바다는 말 안 해도 다 안다는 듯 하구를 보듬는다
장사가 어려워 가게를 폐업하던 날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뭍의 등을 철썩철썩 쓸어내린다
“낮은 곳에서 서로 힘이 되는 것들의 속내를 미려하게 묘사”
‘시인은 ‘시’를 매개로 사람과 사물의 본질을 구현하고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드러내어 파장을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준으로 2023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작품 673편을 읽는 동안 여러 번 행복하였다. 너무 많은 비유가 오히려 흠집을 내는 경우가 더러 있기는 했지만, 사물과 사람의 아름다움을 역량껏 드러낸 좋은 작품들은 시간을 두고 찬찬히 새겨읽고 싶었다.
여러 번 정성 들여 읽는 단계를 거쳐 1차로 선정한 일곱 작품은 「서폐」, 「눈과 발」, 「가장 낮은 곳의 말」, 「동백낭 아래」, 「회색 늑대」, 「유성」, 「마두금」이었다. 일곱 개의 시를 되풀이하여 읽고 난 후 「서폐」와 「눈과 발」, 「가장 낮은 곳의 말」을 2차로 선정하였다.
박승균 님의 「눈과 발」은 적절한 수사와 시적 장치들이 좋았고, 차분하게 주제를 끌고 가는 능력이 돋보였다. 뭉클한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읽을 맛도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선가 있을 법한, 그리고 어느 작품에선가 본 듯한 결말이 마음 한구석을 서운하게 했다.
노수옥의 님의 「서폐」는 ‘책허파’라는 독특한 소재를 온전히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능숙한 언어의 운용이 돋보이고 작품의 분위기를 책임지는 시적 화자의 시선 처리와 묘사도 정연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당선작과 경합했으나 매우 아쉽게 되었다.
2023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함종대 님의 「가장 낮은 곳의 말」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가장 낮은 곳의 말」은 시상을 무리하게 전개하지 않으면서, 청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매끄럽게 써 내려간 작품이다. 작품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도 시의적절하였다. ‘발톱’이라는 오브제에서 시작한 시적인 사유를 거침없이 확장해내는 활달함도 돋보였다. 낮은 곳에서 서로 힘이 되는 것들의 ‘속내’를 미려하게 묘사해내는 점도 작가의 가능성을 짐작하게 했다. 대한민국 시단에 무르익은 기량을 맘껏 펼치시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김영(시인, 전북문학관장)
발톱은 발의 말이다
발은 한순간도 표현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나는 낮은 곳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짓눌리거나 압박받는 곳에서 나오는 언어는 어감이 딱딱하다
그렇다고 낮은 곳 아우성이 다 각질은 아니어서
옥죈 것을 벗겨 어루만지면 이내 호응한다
늦은 퇴근 후 양말을 벗으면
탈진하여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발가락들이 하는 말을 더럽다고 외면한 날이 많았다
안으로 삼킨 말이 발등으로 통통 부어오른 날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나에게 내미는 말을
나는 야멸차게 잘라내며 살았구나
오늘은 발을 개울에 데려간다
물은 지금 머무는 곳이 가장 높은 곳이라
말하지 않아도 속내를 아는 양
같은 족을 만난 듯 온몸으로 감싸 안는다
발이 내어놓는 울음인지 물의 손길인지
분간할 수 없는 감정이 봄나무에 물오르듯 올라온다
머리를 낮게 숙여 두 손으로 발을 잡아본다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는지 볼까지 흠뻑 젖었다
개울이 발의 울음소리까지 보듬는 걸 보면
오래전부터 산의 발등이나
나무들의 발가락을 어루만져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개울도 울컥거릴 때가 있어 강에 발을 담근다
바다는 말 안 해도 다 안다는 듯 하구를 보듬는다
장사가 어려워 가게를 폐업하던 날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뭍의 등을 철썩철썩 쓸어내린다
“낮은 곳에서 서로 힘이 되는 것들의 속내를 미려하게 묘사”
‘시인은 ‘시’를 매개로 사람과 사물의 본질을 구현하고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드러내어 파장을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준으로 2023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작품 673편을 읽는 동안 여러 번 행복하였다. 너무 많은 비유가 오히려 흠집을 내는 경우가 더러 있기는 했지만, 사물과 사람의 아름다움을 역량껏 드러낸 좋은 작품들은 시간을 두고 찬찬히 새겨읽고 싶었다.
여러 번 정성 들여 읽는 단계를 거쳐 1차로 선정한 일곱 작품은 「서폐」, 「눈과 발」, 「가장 낮은 곳의 말」, 「동백낭 아래」, 「회색 늑대」, 「유성」, 「마두금」이었다. 일곱 개의 시를 되풀이하여 읽고 난 후 「서폐」와 「눈과 발」, 「가장 낮은 곳의 말」을 2차로 선정하였다.
박승균 님의 「눈과 발」은 적절한 수사와 시적 장치들이 좋았고, 차분하게 주제를 끌고 가는 능력이 돋보였다. 뭉클한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읽을 맛도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선가 있을 법한, 그리고 어느 작품에선가 본 듯한 결말이 마음 한구석을 서운하게 했다.
노수옥의 님의 「서폐」는 ‘책허파’라는 독특한 소재를 온전히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능숙한 언어의 운용이 돋보이고 작품의 분위기를 책임지는 시적 화자의 시선 처리와 묘사도 정연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당선작과 경합했으나 매우 아쉽게 되었다.
2023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함종대 님의 「가장 낮은 곳의 말」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가장 낮은 곳의 말」은 시상을 무리하게 전개하지 않으면서, 청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매끄럽게 써 내려간 작품이다. 작품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도 시의적절하였다. ‘발톱’이라는 오브제에서 시작한 시적인 사유를 거침없이 확장해내는 활달함도 돋보였다. 낮은 곳에서 서로 힘이 되는 것들의 ‘속내’를 미려하게 묘사해내는 점도 작가의 가능성을 짐작하게 했다. 대한민국 시단에 무르익은 기량을 맘껏 펼치시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김영(시인, 전북문학관장)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