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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가마터 - 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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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19회 작성일 2021-11-13 18:21:3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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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가마터

김숙

  2019년 5월 18일, 수필 동아리 수수밭 MT에 참석했다. 자동차 운전을 덜 부담스러워하는 L 학우가 차를 몰았고 ‘꿈꾸는 뜰’을 닉네임으로 쓰는 J 학우, ‘SDU 전북 모임’ P 회장도 함께였다.
  직지사를 품고 있는 황악산 골짜기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불현듯 정년퇴임 날 밤과 이튿날 새벽 즈음에 꾸었던 꿈이 떠올랐다. 어느 산중에 있는 도자기 가마터를 찾아갔던 꿈이었다. 그때처럼 산을 타오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깊숙한 산속이 맞물리면서 기억이 되살았다.

  지난해 9월 1일은 퇴임 이튿날이었다. “우르릉 쾅쾅.”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보니 우레가 요란하였고 동이로 들이붓듯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꼭두새벽 기상으로 익숙했던 몸은 제풀에 소스라쳐 놀랐다. 이 빗속을 뚫고 어디론가 향해야 할 것 같은 긴장감이 몰려왔지만 오랜 세월 걸어왔던 길을 잃은 아침이었다.
  희붐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꿈속에 걸었던 길을 되짚어 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독립군이었다. 아니 이름 없는 의병이었다. 험준한 바위산을 넘어갔는데 중국 장가계의 어느 협곡 같기도 했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마추픽추의 고산 길 같기도 했다. 아슴푸레한 기억 속에는 두어 명의 동지도 보였다.
  다다른 곳은 어느 도자기 가마터였다. 속내로는 의병들의 본거지였다. 그곳엔 천민과 백정, 양반은 물론 농민과 갖바치도 드나들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최근 종영한 역사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프레임 속에 내가 있었다.
  가마터 주인은 탤런트 김갑수였는데 조선 최고의 도공이면서 의병 대장이었다. 그는 나에게 팥죽이 그득한 가마솥을 안겨주었다. 내 임무는 동지들에게 팥죽을 나눠주는 일이었다. 새알심이 동실동실 떠다니는 팥죽을 오지그릇에, 쭈그러진 양재기, 이 빠진 사기그릇에 덜어주었다. 팔도에서 뜻을 모은 의병이 제각각이듯 담는 그릇도 각양각색이었다.   
  한참 팥죽을 나누고 있었는데 “우르릉 쾅쾅.” 요란한 폭음이 울렸다. 적군의 침략인지 토벌군의 작전인지 모를 일이었다. 대포 쏘는 소리 같이 무시무시하였다. 우리 동지들의 무기라고 해봤자 기껏해야 총칼이 다였는데 ‘아! 경각의 시점은 이렇게 오고야 마는가?’ ‘저 정도 굉음의 신무기라면 이젠 우리 모두 죽겠구나.’ 고뇌하며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다 눈이 번쩍 뜨였다. 그것의 진원은 천둥소리였다. “앗, 꿈길이었어?” 그랬다. 꿈이었다.

  모임 장소에 예정 시각보다 늦게 도착한 우리는 합평 시작 전에 직지사 경내를 후딱후딱 돌아보기로 하였다. 자주 오기 어려운 곳이니 아쉬운 마음을 그렇게라도 위안 삼아 볼 요량이었다. 사천왕상 앞에서 서툰 합장을 하고 묵례를 올렸다. 대자연 속에 잠시라도 머물 수 있게 된 감사 인사를 수문장께라도 아뢰는 마음이었다. 소나무 향기가 연무처럼 골짜기에 가득하였다. 그 아래를 걷기만 하여도 산속의 좋은 기운이 다가왔다.
  절집 마당에는 초파일에 달았던 연등이 누군가의 간절함을 경건하게 발원하는 듯하였다. 전각 아래는 모란꽃 진 자리를 뒤로 진분홍 작약꽃 또한 이울고 있었다. 어느 모퉁이에는 하얀 설토화가 피었다가 우수수 쏟아지고. 마치 하늘의 별들이 떨어져 땅 위에 은하수를 흐르게 하고 싶은 것 같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대웅전 모서리 문에서 건성으로 합장하고 슬쩍 지나쳤다. 옥동자를 점지한다는 비로전 나신의 동자상을 확인하고 길을 내려왔다.

  오던 길에 ‘백수 문학관’에 들렀다. 시조 문학의 큰 산맥인 백수(白水) 정완영(鄭椀永)의 문학관이었다. 때마침 앞뜰에서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시인 탄신 100주년 기념 감꽃 음악회였다. 우리가 뜰을 지나 문학관으로 들어갈 때는 가야금 합주가 끝나고 오카리나 독주가 연주되고 있었다. 비 내리는 산골짜기에 오카리나 소리가 멀고 가깝게, 깊고 얕게 풀빛인 듯 산빛인 양 젖어 들었다. 흙으로 구워 만든 악기의 선율이어서 자연과 저리 잘 어울릴까? 그 가락에 얹어 백수의 시를 읊조려보니 그대로 노래가 되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에, 보는 이도 없는 날에/ 푸른 산 뻐꾸기 울고, 감꽃 하나 떨어진다/ 감꽃만 떨어져 누워도 온 세상은 환! 하다.// 울고 있는 뻐꾸기에게, 떨어져 누운 감꽃에게/ 이 세상 한복판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여기가 그 자리라며, 감꽃 둘레 환! 하다.                              (정완영, <감꽃>)   

  민박집에 도착하자 수수밭 동아리 MT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때 내가 퇴임하던 날 밤 꾸었던 꿈이 다시 떠올랐다. 어렴풋했던 분위기가 이곳과 겹쳤다. 꿈에서는 흙으로 빚는 도자기 터를 찾아갔다면 이곳은 마음을 빚어 구워내는 가마터에 온 것 같았다. 꿈에 의병대장이 있었다면 여기서는 추상(秋霜)같은 임헌영 교수님을 만났다.
  교수님은 미간을 중심으로 하얀 눈썹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상서로운 백호의 기상이랄까? 날개를 활짝 펴고 창공을 자유롭게 비행하는 콘도르의 위용이랄까? 그 시선 안에 천 명의 도공, 만 명의 문사도 품을 수 있겠다는 너끈함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꿈속에 뜻을 같이했던 동지들처럼 이곳은 선후배 문우들의 집결지였다. 취향을 공유하고 창작을 통해 성장해 가는 장인들이 질 좋은 도자기를 구워내듯 자신의 글을 통해 삶을 완성해 가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각자의 글을 빚고 다듬기도 하지만 합평을 통하여 글에 대한 의견을 내고 공감을 나눴다. 서로 돕고 소통하는 공간이었다.
  먼저 되었다고 자랑하거나 으스대지 않았다. 처음 시작하는 신입 회원에게도 기꺼이 품을 열어주었다. 수필 쓰는 이들의 특징이었을지 덕분에 오프라인 모임에 처음 참석한 나도 이 동아리의 일원으로 자연스레 스몄다.

  이들은 또 궂고 힘든 일에 너와 내가 없었다. 30여 명이 넘는 식사를 챙기는 데 서로 솔선하였다. 음식을 나르고 상을 차리며 고기 구울 불을 피우는 일에 누구도 미적거림이 없었다. 질 좋은 쌀로 구수한 밥을 지었다. 심심하게 끓인 배추된장국이 정겨웠다. 귀하디귀한 두릅 전이 나오고 홍어 전이 차려졌다. 언젠가 다시 먹어보고 싶었던 방아 잎 장떡도 마련되었다. 홍어가 삭힌 맛이 있다면 방아 잎은 다시 먹어보아도 묘한 향이 매력적인 식자재였다.
  강원도에서 품고 온 오미자 막걸리에 부안에서 날라 온 뽕 주 한잔의 나눔이 분위기를 한껏 돋웠다. 모름지기 사람의 향기가 나는 가마터였다. 꿈속에서 나는 동지들에게 팥죽을 열심히 나눴었는데 이곳에서는 차려 준 밥상만 과분하게 받았다. 음식을 준비하고 수고한 손길을 위하여 고마움의 건배 제의를 하고 싶었다.
   
  밤늦도록 가마터는 불타올랐다. 새로 등단한 작가에게는 축하의 시간을 기획하였다.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 전달식도 진행하였다. 각자의 의견을 돌아가면서 발표하는 시간도 의미 있었다. 내 순서가 되었을 때 나는 신입의 어눌함으로 떨거나 중언부언이었다. 어느 선배는 자기의 글쓰기는 “학교와 교도소의 반성문에서 비롯되었다.”라고 했다. 결론은 선생님도 교도관도 “반성문을 읽지 않는 것 같더라.”라고 말해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임 교수님의 구상 시인과의 인연 이야기, 근현대역사 이야기와 문학 이야기는 후학들에게 살아있는 증언 그 자체였다. 날 새워 들어도 끝나지 않을 재미난 이야기를 남겨두고 우리 일행은 미리 약속한 새벽 한 시에 길을 나섰다.
  황악산 어디쯤에서 소쩍새 소리가 들렸다. “딸꾹, 딸꾹, 딸꾹….” 비로전 나신의 동자승이 잠시 소쩍새의 몸을 빌렸을까? 점지해 준다는 옥동자 대신 수수밭 동아리를 마음의 가마터로 안겨주겠다고 속삭여 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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