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무] 깊은 눈/이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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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눈/이재무
마을 회관 한 구석 고물상 기다리며
한 마리 늙고 지친 짐승처럼 쭈그려 앉은,
흙에서 멀어진 적막과 폐허를 본다
젊어 한때 쟁기가 되어
수만 평의 논 갈아엎을 때마다
무논 젖은 흙들은 찰랑찰랑 얼마나
진저리치며 환희에 들떠 바르르 떨어댔던가
흙에 생 담궈야 더욱 빝나던 몸 아니었던가
논일 끝나면 밭일, 밭일 끝나면 읍내 장터에,
잔치집에, 떡방앗간에, 예식장에, 초상집에,
공판장에, 면사무소에, 군청에, 시위 현장에
부르는 곳이면 가서 제 할 도리 다해온 그였다
눈 많이 내렸던 그해 겨울밤은
만취한 주인 실고 오다가 멀쩡한 다리 치받고
개울에 빠져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저 또한 팔 다리 빠지고 어깨와 허리
크게 상하기도 했던 돌아보면 파란만장한 노동의,
그 오랜 시간을 에누리 없이 오체투지로 살아온
그가 오늘은 바람이 저를 다녀갈 때마다 저렇듯
무력하게 검붉은 살비듬이나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몸의 기관들 거듭 갈아 끼우며
겨우 오늘에까지 연명해온 목숨 아닌가
올 봄 마지막으로 그가 갈아 만든 논에
실하게 뿌리내린 벼이삭들 달디 단 가을 볕
쪽쪽 빨아 마시며 불어오는 바람 출렁, 그네 타는데
때 늦게 찾아온 불안한 안식에 좌불안석인 그를
하늘의 깊은 눈이 내려다보고 있다
마을 회관 한 구석 고물상 기다리며
한 마리 늙고 지친 짐승처럼 쭈그려 앉은,
흙에서 멀어진 적막과 폐허를 본다
젊어 한때 쟁기가 되어
수만 평의 논 갈아엎을 때마다
무논 젖은 흙들은 찰랑찰랑 얼마나
진저리치며 환희에 들떠 바르르 떨어댔던가
흙에 생 담궈야 더욱 빝나던 몸 아니었던가
논일 끝나면 밭일, 밭일 끝나면 읍내 장터에,
잔치집에, 떡방앗간에, 예식장에, 초상집에,
공판장에, 면사무소에, 군청에, 시위 현장에
부르는 곳이면 가서 제 할 도리 다해온 그였다
눈 많이 내렸던 그해 겨울밤은
만취한 주인 실고 오다가 멀쩡한 다리 치받고
개울에 빠져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저 또한 팔 다리 빠지고 어깨와 허리
크게 상하기도 했던 돌아보면 파란만장한 노동의,
그 오랜 시간을 에누리 없이 오체투지로 살아온
그가 오늘은 바람이 저를 다녀갈 때마다 저렇듯
무력하게 검붉은 살비듬이나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몸의 기관들 거듭 갈아 끼우며
겨우 오늘에까지 연명해온 목숨 아닌가
올 봄 마지막으로 그가 갈아 만든 논에
실하게 뿌리내린 벼이삭들 달디 단 가을 볕
쪽쪽 빨아 마시며 불어오는 바람 출렁, 그네 타는데
때 늦게 찾아온 불안한 안식에 좌불안석인 그를
하늘의 깊은 눈이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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